판화의 종류,역사,용어 및 기법 해설
* 에디션(Edition)
* 에디션넘버(Edition Number) 판화에는 같은 것이 여럿이 있으므로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기는 일로서(Signed and Numbered) 희소성이나 시장가치를 높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예로 10/100이라고 적은 것은 100장 찍은 중 10번째의 작품이라는 말로서 찍은 순서나 작품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장 한 장에 그렇게 이름을 매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 대개 작품의 밑 좌우에 넣어져 있다. 무번호 무서명판(Unnumbered & Unsigned Edition)도 있다. 1974년 뉴욕에서 판매된 석판화 18장의 스윗은 250부 한정 중 AP 25부,PP 20부,TP 20부,BAT 5부,HC 5부로 발매했다. 이렇듯 번호외의 영문 알파벳으로 표기하는데도 발행부수를 표기 하는 것이 맞다고 보아지는데 그렇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몌를 몇 부 발행했는지 알길이 없다.
* AP (Artist Proof) 에디션 부수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서 불어로는 EA, EP, EPA(Preuve de Artiste, Preuve deChapelle)로 표기하는데 한정판에 있어서 번호 외의 판화로서 작가나 간행자를 위해 기록 보존을 목적으로 하기도 하고 판매목적의 견본이 되기도 하는데 한정부수보다 이것이 많으면 의미가 없어지므로 국제적으로 한정부수의 10% 내외로 발행한다. 'Extra Proofs in Limited'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원판폐기나 한정부수의 개념이 없었던 시대의 원판을 요즈음에 와서 찍어내는 'Extra Edition'이라는 넘버 외의 한정판과는 구별되며 상업주의의 요구로 판매도 된다. TP (Trial Proof)작가가 에대션에 들어가기 전에 찍어보는 시험프린팅에 해당되며 몌와는 구별되고 순회전용(Travellers Proof)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 PP (Present Proof) 선물용, 증정용의 의미이며 'Printer's Proof'로 표기되기도 하며 이렇게 표기되어 있는 것도 상업주의의 요구로 모두 판매되기도 하는데 심지어 '비매품'이라 표기된 HC 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알파벳으로 표기된 것이 한정부수에 비해서 얼마나 발행되었는지를 알아 보는 것이 상식이다. 또 이런 것들은 대개 1%-2% 안쪽으로 극소수로 찍어내는 것이 상식이다. 또 이런 알파벳은 작가나 간행자의 합의하에 표기하게 되는데 붙이기 나름으로써 제각각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BAT (Bon Tirer) 최상의 시험인쇄라는 말인데 에디션에 들어가기 전에 찍어보는 TP의 완성판으로서 작가, 간행자,공방 보존용이 되며 AP처럼 판매 목적의 견본이 되기도 한다.
* 라지에디션 (Large Edition) 작가나 간행자에 의해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을 말한다. 대개 판화의 한정부수는 100부나 200부 내외를 말하는데 시장원리에 따라개념의 차이에 따라 라지에디션 판화라고 말할 수 있겠으라 500부이상 1000부로 발행했다면 라지에디션이라 말할 수 있겠다. 소량으로 찍은 것 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 포스튜머드에디션 (Posthumous Edition) 작가가 생존 중에 찍어내지 못하고 유족들이 찍어낸 것이라면 여기에 해당되는 데 사후에 찍었다는 의미로서 이런 작품에는 분명히 유족대표의 사인이라든지 발행처,발행부수,발행날짜 등을 명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러지 못하면 시장경제를 혼동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Late Impression'불어로는 Post Rieur로 표기한다.
* HC (Hors Commerce) 비매품이라는 불어로서 새로운 작품의 견본으로 사용되는 극소수의 부수를 발행해서 에디션 번호 외의 AP나 BAT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 리스트라이그 (Restrikes) 오리지널에디션이 완성된 뒤 폐기하지 않은 원판으로 찍어낸 판화로서, 판이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는 작가 외의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가필 또는 수정해서 찍어낸 판화를 일컫는다.
* 에스탕프 (Estampe) 본래는 판화라는 불어이지만 요즈음은 복제 인쇄를 이르는 말.
* 스테이트 (State) 본 에디션에 들어가기 전단계로 찍어보는 판화. 'EE'로도 표기하는데 가필 수정되어 찍어지는 것으로서 렘브란트 판화에서 이런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퍼블리셔 (Publisher) 불어로는 'Editeur'로서 작가로부터 판권을 사서 에디션을 발행하는 사람.
* 사르코그라피 (Chalcographie) 오목판화의 별명으로서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의 판화 보존실에 약 14,000점이 시대별 작가별로 문화유산으로 보관되어 있다. 리스트라이크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1661년 이후의 작품은 거의 모두 작가 자신에 의해 원판(동판)이 재판되어 찍혀 있으나 그 이전의 작품에는 원판이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루부르미술관이 오랜 세월에 걸쳐 원판을 완벽하게 재현해서 만든 복각원판으로 찍어 낸 두 종류가 있다. 이것을 미술판측이 때때로 간행해서 콜렉터에게 분포하는데 작품에는 'MUS E DU LOUVRE CHALCOGRAPHIE'라는 철인이 찍혀져 있는 판화이다.
* CP (Cancellation Proof) 판화제작에서는 계획된 한정부수 완료 후 원판을 폐기해서 한 장을 찍어내게 된다. 이것을 일컫는데 'Corssed Plate'로도 표기한다.
* ·에디션(edition) 그림을 모두 몇 장을 찍었는가를 표시하는 숫자를 에디션 넘버라고 한다. 만약 그림의 제일 왼쪽에 분수로 12/30 이라고 쓰여 있는 경우, 총 30장을 찍은 것 가운데 12번째 작품(꼭 찍어낸 순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이란 것을 의미한다.
* ·A.P 또는 E.P 에디션 넘버가 없이 A.P(Artist Proof)나 E.P(Epreuve d'artiste) 등의 싸인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작가 보존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양은 보통 총 에디션 숫자의 10% 이내로 한정한다.
* ·C.P (Cancellation Proof) 판을 다 찍은 후 더 이상 찍어내지 못하게 판면에 X자(혹은 명확한 표시)를 그은 다음 그것을 찍거나 하여 판의 폐기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하여 더 이상 그 작품을 찍어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 ·오리지널(original) 판화 작가가 직접 만든 것. 판화에서는 작가 자신이 원래의 판을 제작한 경우, 즉 나무판을 직접 깎거나 동판 작업을 실제로 한 판화 작품을 의미한다. 오리지널 판화에는 반드시 작가의 싸인 뿐 아니라 전체의 에디션 매수와 일련 번호가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 ·복제(reproduction) 작가의 사인이 있고 매수가 제한되어 있다하더라도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리지널 작품을 사진 제판술에 의하여 혹은 그 밖의 다른 기계적 과정에 의해 복사한 것. 비록 판화 작품이러고 볼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오리지널 작품을 그대로 모사했거나 아니면 상당히 가깝게 복사한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최근 인쇄술이 발달하여 오리지널과 리프로덕션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 ·복수예술(multiples) 산업적 공정이나 실크 스크린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미술 작품으로 평면 뿐 아니라 입체작품도 포함된다. 따라서 양적으로 복수인 것이 특징이나 복제와는 구분된다. 이 복수 예술은 하나 뿐인 원본보다 싼 값으로 제작자의 서명이 덧붙여져서 수집가들에게 제공되었다.
'판화'를 '복제'(reproduction)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복제란 원래 작품을 기계적인 수단에 의해 그대로 '베낀 것'(copy)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판화는 하나의 창의적인 작품으로 인정을 받으며, 판화의 작품성과 함께 진본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작가의 서명을 남기게 되어있다. 작가들은 자신이 직접 제작에 임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숙련된 판화 기술자들에게 의뢰하여 제작하기도 한다. 인쇄된 도판이 진본 판화(original prints)로 판매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미국판화가협회(The Print Council df America)는 1964년 진본 판화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단 1930년 이전에 제작된 판화에는 해당되지 않음) a. 판화의 제작은 작가가 동판이나 석판, 목판 또는 기타 재료의 표면에 직접 원화 (master image) 를 작업해야 한다. b. 판화의 제작 공정은 표시된 재료를 사용하여 작가 자신이나 작가의 지시를 받은 사람에 의해 시행될 수 있다. c. 완성된 판화작품은 반드시 작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는 작가의 서명이 없는 판화 작 품도 구할 수 있으나 이런 작품은 서명이 된 작품에 의하여 대개는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된다.
1.목판화 木版畵 woodcut
나무판에 새긴 그림을 채색하여 천이나 종이에 옮겨 찍는 기법 또는 그 작품. 5세기부터 중국에서 직물을 장식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이 기법은 부조의 양각으로 무늬를 찍는 가장 오래된 방법의 하나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화는 중국 당나라 때 간행된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868,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의 변상도(變相圖)이다. 이는 종이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달이 앞서 있던 중국에서 목판화 기법 역시 유럽에 비해 앞서 발달했음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14세기초부터 직물에 목판화를 찍는 방법이 알려졌지만, 14세기말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종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이 기법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헤로데 앞의 그리스도 Christ Before Herod〉(대영박물관 소장)를 비롯해 윤곽선이 굵고 음영이 거의 없는 몇몇 목판은 1400년 무렵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지만, 제작연도가 확정된 유럽 최초의 목판은 독일의 장크트크리스토프 출판사가 1423년에 만든 것이다.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및 보헤미아에서 15세기초에 처음 만든 성화와 트럼프는 목판으로 찍었고, 활판을 이용한 인쇄술이 개발되자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서도 목판 삽화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16세기에는 알브레히트 뒤러와 그의 제자들인 루카스 크라나흐 및 한스 홀바인의 작품에서 검은 선으로 나타내는 목판화가 그 절정에 달했다. 네덜란드의 뤼카스 반 레이덴과 이탈리아의 야코포 데 바르바리 및 도메니코 캄파뇰라는 뒤러와 마찬가지로 동판화가였지만 목판화도 제작했다. 목판술은 값싸게 삽화를 만드는 수단으로 17세기에 널리 쓰였지만, 주요화가 중에 이 기법을 채택한 사람은 없었다. 19세기초에는 목판 인그레이빙이 목판화를 완전히 대신하게 되었는데, 목판 인그레이빙은 목판보다 더 쉽고 정확하게 그림과 조각을 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 사진제판술이 개발되자, 목판 인그레이빙도 인기를 잃었다. 거의 같은 무렵 주요화가들은 목판화의 잠재된 표현기법을 개발했다. 옛날부터 목판화에 사용된 나무는 결이 고운 경질목재였지만, 노르웨이의 미술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그대신 연질목재를 채택했고,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은 나무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새로운 색조와 질감을 얻었다. 독일에서는 목판이 표현주의자들의 중요한 표현수단이 되었는데, 이들은 중세 목판화의 생명력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이 원하는 강렬한 효과를 얻기 위해 나무를 끌로 파내 거칠게 잘라냈다. 미국에서는 1920, 1930년대에 록웰 켄트의 삽화와 공공사업 진흥국에서 일한 미술가들을 통하여 목판화의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시 콘과 레너드 배스킨, 캐롤 서머스가 미국의 목판화 기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목판화는 일본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16, 17세기에 일본에서는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풍속화 양식이 부각되었다 .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목판화는 값싼 우키요에 그림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편리하고 실용적인 수단이 되었다. 우키요에 목판화를 창안한 사람은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 : 1618~94]로, 통속문학에 삽입된 그의 삽화는 당장 성공을 거두었다. 우키요에의 특수한 한 갈래는 특별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스리모노'[刷物]라는 소형 판화였다. 이 그림에는 대개 시가 적혀 있었고,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한 특수 종이에 찍어냈다. 18세기에 우키요에는 호쿠사이[北笑] 히로시게[廣重]의 풍경화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19세기말에는 많은 우키요에 목판화가 서양으로 전해져 현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0세기에 이르러 무나카타 시코[棟方志功], 히라쓰카 운이치[平塚運一], 마에카와 센판[前川千帆, 온치 고시로[恩地孝四郞] 같은 일본 판화의 거장들이 목판화 기법을 부흥시켰다. 한국의 목판화 한국에 판화의 원리가 도입된 것은 7세기 후반 불인(佛印) 등이 사용되면서부터였으며, 이 기법이 종교화에 도입되면서 판화의 시초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목판화 중 가장 오래된 예는 1007년(고려 목종 10)에 제작된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 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印陀羅尼經 책머리에 있는 변상도(變相圖)이다. 이후 고려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의 불화가 목판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종교화는 조선시대의 목판화에서도 주종을 이루었는데, 불경의 변상도나 탱화 외에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 등의 유교판화가 그 예다. 이밖에 〈일성록 日省錄〉·〈진찬의궤 進饌儀軌〉 등의 도서에도 목판화 기법을 이용한 많은 삽화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목판화의 도입은 6·25전쟁 이후인 1950년대 후반에 이루어졌다. 1958년에는 한국판화협회가 창설되었으며, 이후 1960, 1970년대를 거쳐 목판화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판화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80년대초부터 이른바 '민중판화'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목판화 운동은 특기할 만하다. 오윤·이철수·김봉근 등이 주축이 된 이들의 판화는 목판화가 지니는 간단명료한 선과 이미지의 압축으로 기층민중의 건강한 정서를 표출해왔다. 한편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김상구 등의 목판화 활동도 주목되고 있다.
2. 동판화
동판에 직접 선각(線刻)하는 오목판화 기법과 산성 용액을 사용하는 부식요판 기법으로 나눌 수 있다. 오목판화 기법에는 인그레이빙·드라이포인트·메조틴트가 있고, 부식요판 기법에는 에칭·애쿼틴트 등이 있다.
1. 에칭, etching 주로 동판 등의 금속판에 밑그림을 그려 산(酸)으로 부식시킴으로써 판화를 만드는 기법. 동판 면에 항산성 물질인 그라운드를 입히고 그 위에 뾰족한 도구로 밑그림을 그린다. 그라운드는 대개 밀납·역청·송진의 혼합물이다. 밑그림을 새긴 동판을 질산 등 부식액에 넣으면 그라운드가 벗겨진 그림 부분이 부식되면서 동판에 홈이 패여 선 형태가 새겨진다. 판 위의 그라운드를 닦아낸 뒤 잉크를 발라 습기를 가한 종이에 압착시키면 그림이 종이에 옮겨지면서 판화가 완성된다. 에칭 판화기법은 갑옷 장식무늬를 에칭으로 새기던 관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화가들은 뷔랭이라 불리는 용구로 금속판에 그림을 새겨넣는 인그레이빙 기법보다 손쉬운 수단으로 이 방식을 채택했다. 연도가 확인된 최초의 에칭 판화는 1513년 스위스의 미술가 우르스 그라프가 철판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이었다. 많은 판화 작품을 남긴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오직 5점의 에칭 작품만을 제작했다. 〈대포 Cannon〉(1518)에서 그는 인그레이빙의 형식적·계획적인 성질을 본뜨고자 했는데, 이는 북유럽에서 에칭의 자연스럽고 유동적인 선을 그때까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16세기 이탈리아의 미술가 파르미자니노는 에칭 기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드럽고 우아한 선의 동판화들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판화가 자크 칼로는 연작그림 〈전쟁의 대참상 Miseries of War〉(1633)에서 인그레이빙의 보조수단으로 에칭을 이용했다. 그는 에칭 기법으로 금속판에 선을 새긴 다음 거기에다 다시 뷔랭으로 선을 보강했다. 순수 에칭 판화의 최초이자 최고의 거장은 렘브란트(1606~69)였다. 그는 인그레이빙과의 연관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이 기법의 특성인 자유로움을 활용하여 빛과 분위기, 공간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가적 솜씨로 표현한 300점 이상의 에칭 작품을 만들었다. 18세기 베네치아의 미술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와 카날레토 또한 에칭을 이용하여 분위기 효과를 포착했으며 로마의 에칭 제작자이자 고고학자였던 잠바티스타 피라네시는 불길한 상상의 감옥 내부 장면을 그린 연작 〈카르체리 Carceri〉(1745경)에서 에칭을 이용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페인의 미술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연작 〈전쟁의 참상 Los desastres de la guerra〉(1810~14)은 이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고야의 다른 대부분의 판화와는 달리 이 연작은 애쿼틴트 기법을 거의 쓰지 않고 주로 에칭으로 제작되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는 묽은 바니시로 만든 소프트그라운드 에칭이 널리 유행했다. 이 기법은 지극히 연한 점액질의 그라운드를 입힌 동판 위에 종이를 부착하여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다. 연필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종이에 그라운드가 들러붙어 금속 면에는 넓고 부드러운 선들이 남게 된다. 이어서 금속판을 산 처리하여 판화를 찍으면 연필화나 분필화와 같은 효과가 얻어진다. 이것은 원래 복제 기법이었으나 18세기 영국의 미술가 토머스 게인즈버러와 존 셀 코트먼, 토머스 거틴 등은 이 기법을 주로 풍경화의 원화를 그리는 데 사용했다. 에칭은 19세기에 걸쳐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이용했으며, 20세기에는 몇몇 뛰어난 미술가들이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이 기법을 채택했다. 그 가운데 거장은 파블로 피카소이다. 그는 처음에 에칭을 입체주의 이념의 표현도구로 삼았으며 이어서 자신의 '고전시대'에 접어들어 에칭 기법으로 그려내는 선의 순수성을 이용했다.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조르주 루오, 후안 미로, 스탠리 헤이터 등도 에칭을 매체로 많은 주요작품을 제작했다.
2. 아쿼틴트 (aquatint)
판화 기법의 하나. 에칭의 한 갈래로서 폭넓은 색조 범위를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 기법을 애쿼틴트라고 하는 이유는 완성된 작품이 수채화나 담채화와 비슷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판 위에 송진 가루나 설탕을 엷게 입힌 뒤 산(酸)을 접촉시키는데 이때 산은 송진이나 설탕 알갱이 사이의 틈새에서만 판을 부식하여 표면에 작고 고른 점각을 남긴다. 알갱이를 떼어내고 판을 인쇄하면 넓은 범위의 색조를 얻을 수 있다. 동판에 닿는 산의 농도와 부식시간을 다양하게 조절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조들을 얻을 수 있다. 더욱 뚜렷한 형태를 얻기 위하여 에칭이나 인그레이빙 기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17세기에 뒷날 애쿼틴트 판화로 알려지게 된 것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들이 있었으나 1768년에 와서야 프랑스의 판화가인 장 바티스트 르 프랭스가 송진 알갱이를 사용하여 성공했다. 애쿼틴트는 18세기 후반에, 특히 삽화가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색조의 판화를 만드는 데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데 고야를 제외하고는 유명한 미술가들도 여전히 그것의 섬세한 질감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고야가 만든 판화의 대부분은 애쿼틴트이며 그는 이 기법의 가장 뛰어난 대가로 생각되고 있다. 고야가 죽은 뒤 애쿼틴트는 오랫동안 거의 잊혀져 있다가 에드가 드가(1834~1917)와 카미유 피사로(1830~1903)가 시도하기 시작했으며,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루오와 같은 20세기의 미술가들이 때때로 설탕을 사용하는 애쿼틴트를 되살렸다.현대의 판화가들은 송진 대신 농축 플라스틱 용액을 분무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1.메조틴트 mezzotint black manner라고도 함. 동판화의 일종. 금속판의 표면 전체에 수많은 작은 구멍을 조직적으로 고르게 뚫어서, 판화를 찍으면 이 구멍들 속에 담겨 있던 잉크가 퍼져 넓은 색채면을 이룬다. 금속판에 구멍을 뚫는 작업은 원래 룰렛(뾰족한 바늘로 덮인 작은 바퀴)으로 했지만, 나중에는 크래들 또는 로커라고 부르는 도구를 이용했다. 이 도구는 가장자리에 톱니가 달린 작은 가래와 비슷하다. 이것을 금속판에 대고 긁으면 양쪽으로 금속이 꺼칠꺼칠하게 도드라져 올라오는데, 이것을 '버'(burr)라고 부른다. 완성된 판화에서 하얀색으로 나오기를 원하는 부분에서는 이 금속 조각을 긁어낸다. 20세기에는 카보런덤 돌로 금속판을 여러 방향으로 긁어서 우툴두툴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어 'mezza tinta'('중간 색조'라는 뜻)에서 온 메조틴트라는 용어는 부드럽고 미묘한 색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법의 특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메조틴트 기법으로만 찍은 판화는 대개 무늬가 불분명하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그레이빙이나 에칭 기법을 혼용하기도 한다. 메조틴트 기법은 독일 태생인 루트비히 폰 지겐이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발명했지만, 얼마 후에는 거의 영국에서만 이 기법을 이용 했다. 이 기법은 무척 힘이 들기 때문에 창작품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화려한 검은색과 미묘한 색조 변화, 그리고 특히 다색 판화를 만들기 쉽다는 이점 때문에 그림을 복제하는 데는 이상적인 수단이 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 및 19세기초까지 메조틴트는 일반 사람들이 주요미술가의 그림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9세기에 사진술이 발명된 뒤 메조틴트 기법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20세기 들어서 프랑스의 미술가인 조르주 루오와 영국 판화가인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가 메조틴트 금속판을 만들었다. 20세기 중엽에 메조틴트 기법을 옹호한 가장 유명한 인물은 파리에 거주하는 일본 화가 하마구치 요조[浜口陽三]였는데, 그는 다색 메조틴트 판화를 찍는 기법을 발전시켰다. 영국의 마리오 아바티와 프랑스의 메를랭 에방스 등도 역시 이 기법에 정통한 예술가들이다.
2. 인그레이빙 engraving 금속판에 뷔랭이라는 예리한 도구로 디자인을 새겨 만드는 판화 기법. 현대에 와서는 대부분 동판을 사용하므로 동판화라고도 한다. 또한 선(線)만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선판화법이라고도 하는데 평행선이나 그물 모양의 교차하는 선을 이용하여 색조와 음영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인그레이빙은 15세기 중엽 독일의 라인 강 유역과 이탈리아 북부에서 각각 시작되었다. 이름의 머리글자나 가명으로만 알려져 있는 독일의 금세공인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동판화가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는 E.S.라는 장인과 놀이용 카드를 만든 장인이 있다. 마르틴 숀가우어는 금세공인 겸 화가로 알려진 최초의 동판화가이다. 그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emptation of St. Anthony〉(1470경)은 동판화 기법을 대단히 능숙하게 사용하여 뛰어난 형태감과 표면 질감을 이루었다. 이탈리아에서 인그레이빙은 금세공과 일종의 금속 장식세공인 니엘로(niello : 黑金) 세공으로부터 발생했다. 최초로 이 기법을 사용한 사람은 피렌체의 금세공인 겸 니엘로 세공인인 마소 피니게라(1426~ 64)이다. 이탈리아의 주요한 화가들은 독일의 화가들보다 훨씬 더 열광적으로 인그레이빙을 받아들였다. 15세기말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들인 안드레아 만테냐와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는 훌륭한 인그레이빙을 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인그레이빙이 회화와 급속하게 결합됨으로써 폴라이우올로의 〈나인(裸人)들의 전투 Battle of the Nudes〉(1465경)와 같은 특이한 판화들이 나왔지만, 이런 상황은 한편으로 인그레이빙의 독자적인 발전을 가로막아 인그레이빙은 그뒤 주로 그림들을 복제하는 데 사용되었다. 16세기경에는 인그레이빙의 용도가 그림의 복제로 확고하게 굳어졌으며, 이탈리아에서 인그레이빙의 가장 뛰어난 대가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는 주로 라파엘로의 그림들을 복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북유럽에서는 인그레이빙이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16세기의 가장 뛰어난 판화가 알브레흐트 뒤러와 루카스 반 레이덴은 이 기법으로 매우 훌륭하고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16세기말에 헨드리크 골치우스(1558~1617)와 같은 동판화가들은 계속해서 점점 화려한 기법들을 개발했으나 그와 동시에 인그레이빙의 용도는 더욱더 그림을 복제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17세기 내내 계속된 이러한 경향은 색조의 점진적 변화를 나타낼 수 있는 기법들이 널리 보급됨으로써 더욱 촉진되었다. 뷔랭의 끝으로 판에 점을 찍는 기법은 15세기 후반부터 널리 사용된 기법인데, 17세기말과 18세기에 이르러 점 인그레이빙이나 크레용 양식(또는 초크식·파스텔식 인그레이빙으로도 알려져 있음)으로 통용되는 기법들로 발전했다. 이 기법들로는 뷔랭이나 로커, 룰렛이라는 특별한 도구들을 이용해서 판에 무수한 점과 칼자국들을 만들었다. 17세기에 루트비히 폰 지겐이 고안한 이와 비슷한 기법인 메조틴트를 계기로 18세기에는 이 기법들이 거의 선 인그레이빙을 대체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 미술가인 자크 비용과 에릭 길,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 같은 영국 미술가들이 선 인그레이빙을 어느 정도 부활시켰다. 헤이터는 이 기법이 추상화를 비롯한 여러 경향의 현대 미술에 어울리는 매체라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했다. 미국의 판화가인 모리쇼 러샌스키와 게이버 피터디 역시 인그레이빙을 다루었다.
3. 드라이포인트 drypoint
3. 석판화 石版畵 Iithography (그리스어로 '돌'이라는 뜻의 lithos에서 유래) 물과 기름이 반발하는 성질을 이용한 평면인쇄기법 또는 그 작품. 석판 제작과정에서 잉크는 평평한 판 표면에 유성으로 그려진 도안 위에만 묻으며, 나머지 부분에는 물기 때문에 묻지 않는다. 그래서 잉크가 입혀진 도안은 대부분의 판화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인쇄기로 종이에 직접 찍혀나오거나 상업인쇄에서와 같이 고무 실린더에 찍힌다. 이 공정은 1798년 뮌헨의 알로이스 제너펠더가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다공질의 바이에른산 석회석을 판석으로 이용했다. 1818년 제너펠더가 〈석판화 완성 과정 Vollstandiges Lehrbuch der Steindruckerey〉을 발표하기까지 석판인쇄술의 비결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미술작품용 석판화 석판에 유성재료로 직접 그려서 찍어내는 판화기법은 아직까지도 미술가들이 선호하는 석판기법으로서 사실상 제네펠더 시대와 다를 바 없어, 19세기 석판화 제작자들이 사용한 재료와 절차를 오늘날의 판화가들도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 미술에서는 석판을 주로 쓰지만 아연판이나 알루미늄판도 사용하며, 금속판들도 석판과 마찬가지로 다시 쓸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유성 잉크와 석판용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 다음 인쇄하기 전에 특별한 화학용액을 발라 인쇄면을 고정한 후 물을 충분히 묻힌 다음 잉크를 칠한다. 인쇄는 압착해서 밀어내거나 문지르는 프레스기로 이루어진다. 실질적으로 인쇄과정에서 손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석판 하나로 거의 무제한의 사본을 찍어낼 수 있다. 그러나 미술작품용 판화에서는 일정수의 에디션만 찍어 서명하고 번호를 매긴 뒤 석판 자체는 마모시킴으로써 '폐기'한다. 1800년대 중반 프랑스의 미술가들도 석판화를 즐겨 사용했다. 이때 초기 석판화 제작자들은 프랑스 망명중의 프란시스코 데 고야, 테오도르 제리코, 외젠 들라크루아 등이었다. 그러나 오노레 도미에는 이들보다도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신문 만화에서 본격적인 판화작품에 이르기까지 약 4,000종의 석판화를 남겼다. 도미에는 전사(轉寫)제판법 공정을 최초로 이용한 판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 공정은 원화를 석판 대신 먹지에 그려 석판에 밀착한 후 동일한 방식으로 인쇄한다. 이 방법은 석판에 직접 작업하는 것보다 편리하며 최종 인쇄에서도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19세기 후반에는 에드가 드가와 에두아르 마네가 석판작업을 했으며 오딜롱 르동은 석판을 주요표현수단으로 삼았다. 올레오그라프라고도 하는 다색석판화는 19세기 후반에 개발되었다. 당시 널리 쓰이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질이 떨어졌다. 그러나 1890년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손을 거치면서 다색석판화는 새롭게 인기를 끌었다. 그의 뒤를 이어 폴 고갱,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 등이 열성적으로 판화 제작에 몰두했다. 미국에서 이주한 미술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19세기말에 전사제판법으로 제작한 섬세한 템스 강 풍경은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커리어앤드아이브스사가 상업적으로 제작한 직선적이고 거친 표현의 석판화와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20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에드바르트 뭉크와 독일의 표현주의자들, 특히 막스 베크만, 에른스트 키르히너, 케터 콜비츠, 그리고 멕시코의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와 디에고 리베라, 루피노 타마요, 미국의 로크웰 켄트와 벤 샨, 로버트 라우셴버그, 프랑스의 앙리 마티스와 조르주 루오, 그리고 누구보다도 스페인의 파블로 피카소 등이 석판화 기법에 엄청난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4. 사진제판 寫眞製版 photoengraving 사진기술을 응용한 인쇄판 제작공정. 원색분해 과정 광의의 개념으로는 인쇄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인쇄상의 기술을 뜻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사진제작과 마찬가지로 빛에너지를 이용하는 인쇄기술을 뜻한다.일반적으로 제판용 카메라로 스크린을 이용해서 촬영하여 망점으로 형성된 필름을 만든 후 감광물질을 도포한 금속판·플라스틱판 등에 구어 붙여 판을 만든다. 이때 판 위에 상(像)을 새기는 방식은 매우 다양한데, 판의 표면을 기준으로 상의 높이에 따라 볼록판 인쇄와 오목판 인쇄로 나누어진다. 인쇄하려고 하는 상이 양각으로 표현된 볼록판은 인쇄해야 할 부분이 판의 표면과 같기 때문에 판의 표면 전체에 잉크를 발라 인쇄용지에 인쇄한다.반면 오목판의 상은 음각으로 처리되어 있어 잉크를 판의 전면에 바른 후 판의 표면에 있는 잉크를 닦아내고 압력을 주어 오목한 부분의 잉크가 인쇄용지에 묻혀지도록 인쇄한다.사진제판의 역사 가장 초기의 인쇄방법은 목판인쇄로 볼록판으로 인쇄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1966년에 한국의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 속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坵淨光大陀羅尼經〉으로 751년(신라 경덕왕 10) 이전의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에서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목판화로는 1423년에 제작된 〈성 크리스토프 St. Christoph〉로 독일의 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목판인쇄법은 인쇄술이 발명된 초기 이래로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까지도 줄곧 행해졌으나 곧 구리나 백랍 등을 비롯한 기타 여러 금속판을 인쇄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판을 직접 파내는 목판과는 달리 금속판을 사용할 때는 밀랍이나 역청을 입힌 판의 표면에 도안을 그리고 상을 제외한 여백 부분을 남기고 파낸 후 표면을 산으로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드는 방법이 이용되었다. 중세 후기에 들어 유럽에서는 금속판재의 표면에 밀랍·역청 또는 셜랙과 같은 내(耐)부식성 물질을 바르고 나타내고자 하는 상을 긁어내고 부식시키는 오목판 인쇄법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인쇄물을 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감광물질을 인쇄판 제작에 응용하는 실험은 1813년경 프랑스의 석판화 연구가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가 처음으로 시작했다.1826년 니에프스는 최초로 영구적 사진술을 개발했다. 백랍판이나 동판에 감광성 토역청을 바른 후 햇빛이 양각의 밑그림본을 통과하여 판을 비추도록 하면 햇빛이 밑그림을 통과할 때 비도안 부분은 햇빛에 노출되어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때 밑그림으로 인해 햇빛에 노출이 안 된 도안 부분은 라벤더 기름이나 백색 원유에 담가 현상하면 금속판에 상이 만들어진다. 금속판을 부식시키면 상은 음각으로 금속판 위에 새겨지게 되고 이 오목판 상으로부터 양화를 얻게 된다. 니에프스의 발견은 사진술의 기본적인 원리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사진영상이 곧장 인쇄에 응용된 것은 아니었다.한편 감광성을 가진 다양한 천연 합성물을 이용하여 사진제판술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유럽과 미국에서 추진되었는데, 특히 스코틀랜드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먼고 폰턴이 1839년에 발표한 크롬의 특수 합성물이 갖는 감광성에 대한 보고서는 현대적인 사진제판기술의 시조가 되었다. 폰턴은 크롬 합성물을 함유하고 있는 아교가 햇빛을 받았을 때 일으키는 화학적 변화를 밝혀냈지만 이러한 새로운 기술을 인쇄에 적용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사진술의 선구자인 영국인 헨리 폭스 톨벗이 내부식 물질로 알부민과 같은 크롬으로 처리한 콜로이드 사용을 창안하므로써 사진제판술을 오목인쇄판에 도입하게 되었다.
목판화 볼록판의 대표격인 목판화는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진 기법으로서 소박한 판화로 볼 수 있다. 나무라는 판재가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아 적은 힘으로도 화면을 얻어낼 수 있고 찍어내는 종이와 요철을 줄 수 있는 도구들이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고 제작에 필요한 공간도 다른 판종처럼 거추장스럽지도 않으며 큰 경험 없이도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화면의 특징으로는 그린 듯한 효과와는 다른 물리적인 점.선.면과 더불어 담백한 흑과 백의 여백이 주는 형태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볼록 부분에 물감을 묻혀 화면을 찍어내는 원리에의해 제작된다. 기법의 종류에는 널목판기법(Wood Cut)과 눈목판기법(Wood Engraving)이 있다. 널목판이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기법인데 나무가 자라는 종단으로 자른 판 즉 '세로결목판'을 말하며 눈목판은 이와 반대로 나무둥치의 원형대로 나이테가 보이도록 횡단으로 자른 판 즉 '가로결목판'을 말한다. 이는 아주 섬세한 화면을 원할 때 이 기법을 쓰는데 아주 딱딱한 나무를 이용한다.
동판화 동판화는 오목판의 대표격인 판화이다. 동(銅)이라는 금속판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동판화라고 말하는데 동이 제작에 있어서 그렇게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아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 졌는데, 또 정교하게 제작할 수 도 있고 많은 부수를 찍어 내어도 판이 잘 마모되지 않는 특징도 가졌다. 동판화는 꼭 동만 사용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 아연판이나 스텐레스 등도 이용이 되기도 한다. 동판화에는 여러 가지 기법이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직접 새겨나가는 직각법과 간접적인 방법인 부식법이 있다. 직각법에는 뷰린( Burin, 마름모꼴 형태의 송곳의 일종 )이란 도구로 새기면서 그리는데 금욕적이고 정교한 화면을 만들 수 있는 라인 인그레이빙(Line Engreving)이 있다. 'V'자형의 골을 새기듯 화면을 만들어간다. 1cm간격에 약 400개의 선을 새겨 넣을 수 있다. 다음은 드라이포인트(Dry Point)가 있다. 포인트(Point,송곳의 일종)로 화면을 직접 그리면서 새겨가는 기법이다. 새겨가면 까칠까칠한 거스러미(전문용어로 버,Burr)가 생겨,이것을 프린트 해내면 그 자리가 번진듯한 것이 기법의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메조틴트(Mezzotint)라는 기법인데, 판면에 무수한 점이나 선으로 잉크가 고이게 만들어 놓고 (메질) 이 모랫발을 스크레이퍼나,버니셔 같은 도구로 뭉그려트려가며 밝게 화면을 만들어 가는 기법이다.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화면을 원할 때 이 기법을 쓴다. 간접적인 기법에는 부식제와 방식제를 이용한다. 여기에는 라인에칭(Line Etching)과 아콰틴트(Aquatint), 소프트그라운드에칭(Soft Ground Etching), 리프트그라운드에칭(Lift Ground Etching), 딮에칭 (Deep Etching)등이 있다. 부식제는 강한 산을 사용하는데 라인에칭의 경우에는 판재에 방식제(그라운드,아스팔트가 주원료)를 바르고 거기에 송곳으로 원하는 화면을 그리면 방식제는 벗겨져 금속면이 노출된다. 이것을 부식제에 넣어 부식시키면 방식제가 발라진 면은 그대로 있고 부식된 면만 오목하게 되어 화면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에칭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아콰틴트(물,Aqua)는 수채화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에서 나왔는데 판면에 송진가루를 떨어뜨린 후 뒷면에서 열을주어 녹여 정착시키고 부식액에 넣어 부식시킨다. 송진가루가 녹은 부분이 부식되지 않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인데 송진가루외에도 아스팔트분말이나 래커스프레이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소프트 그라운드 에칭 방식제에는 빨리 건조되고 딱딱한 괴막이 형성되는 것과 눅눅한 것이 있는데 크레용이나 콘테의 느낌 또는 지문이나 나뭇잎,천의 조직 같은 효과를 얻는데 이용된다. 리프트 그라운드에칭리프트라는 말은 '들어올린다'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떨어져 나간다'는 해석이 적절하다. 이 기법의 원리는 금속면에 완전히 정착되는 것과 불안정하게 정착되는 것을 이용해서 붓의 터치나 자우로운 선,면을 얻고자 할 때 사용된다. 설탕포화용액이나 아라비아고무용액을 섞은 것을 판면 위에 붓으로 그려서 완전히 말린다. 이것을 방식제를 부어서 막을 입히고 말린 다음 조금 따뜻한 물에 넣어 붓으로 그린 설탕덩어리나 아라비아고무를 녹여 금속면을 노출시킨 후 부식시키는 기법이다.
석판화 석판화는 석판석 또는 금속판재 위에 그려지고 평판인쇄에 의해 얻어진 그림을 말한다. 목판,동판화를 생각하면 이석판화도 돌에 새겨 화면을 얻어 내는 것을 생각되기 쉬우나 물과 기름의 반발 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돌은 천연석(석회석)을 이용하나,돌이 가진 단점을 보완한 금속판재(주로 알루미늄)를 요즈음 많이 쓰고 있다. 석판화는 그린대로 프린팅되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회화적인 판화로 볼 수 있다. 지방기가 있는 것으로 그리고,전사도 가능하며 사진도 이용할 수 있는 등 표현의 제약이 거의 없는 판종이다. 목판화나 동판화가 볼록,오목의 높낮이를 이용하는 물리적인 기법인데 비해 석판화는 판면 위에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을 만들어서 찍어내는 '화학적인 인쇄방법'에 따른 것이다. 물과 기름의 반발 작용을 이용하는 것이라 했는데,그린 부분이 기름이 되고 그리지 않은 부분이 물이 되는데 이것을 완전히 분리시키는데는 아리비아고무라는 것을 사용해서 분리시키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석판화는 드로잉,제판,프린팅 과정에서 순서가 뒤바뀌거나 재료들을 잘 다루지 못하는 등 방심하면 애써 만든 흔적들을 한순간에 망쳐 버리기 일쑤인데 원하는 작품을 얻기까지는 경험과 긴장을 요하는 판화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대행해주는 판화공방들이 세계 도처에 많이 있다.
공판화 공판화는 대개 원하는 화면을 판으로 만들게 되는 제판과정을 통하는데 이 기법은 옛날에 고운 천의 망을 통해서 제작했으며 세리그라프(Seri,천)또는 실크스크린이라 했다. 요즈음은 이런 천 뿐만 아니라 쇠망도 이용되고 해서 국제적으로 '스크린 판화'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고운 천(실크 샤)을 평평한 틀(나무나 알루미늄)에 고정시켜 감광유제를 발라 빛을 쬐어 빛이 통과하지 않은 부분은 물로 씻어 내어버리면, 감광액이 씻겨 나와 천의 구멍이 노출되는데 여기에 물감을 놓고 스퀴지라는 도구로 짜내어 버리면 화면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빛이 통과하지 못하게 까맣게 그리거나 한 부분만이 화면으로 남게된다. 이것은 감광유제를 이용한 기법이지만 그렇지 않고 여하한 방법으로 잉크가 망을 통하거나 그렇치 않게 하여 화면을 만들어가는 기법으로서 상업, 공업적으로도 가장 많이 이용된다. 찍어내고자 하는 매체에 저항감이 거의 없는 판종이다. 중간하프톤이 표현되지 않고 흑백의 단조로움이 화면의 특징으로 들 수 있으며 프린팅과정이 아주 빠르고 남성적인 판종으로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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